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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조자, 부역자들도 모조리 처벌해야 한다.
그렇지 않으면,,,
친일잔재, 나치잔재가 남게 된다.
그 잔재들이...우리의 미래세대를 죽음의 공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.
따라서...반드시...
'유대인'을 '야당'으로만 바꾸면 완벽히 일치한다!
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B-zmNNbA0n4
'유대인과 야당'의 비유를 통해 한 정치적 리더십의 본질과 위험성을 고찰하는 영상입니다. 역사적 사례와 연결하여, 히틀러와 현대 정치의 유사점을 드러내며 권력의 위험과 언론의 역할을 강조합니다. 이 영상은 불합리한 권력 행위가 어떻게 과거를 반복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제공합니다. 우리가 가진 정치적 무관심이 결국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우며,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.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.
핵심 용어
- 윤석열: 윤석열은 현재 한국의 정치인으로, 대통령직을 맡고 있습니다. 그의 정치적 행보와 결정들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, 일부는 그를 독재적 성향의 정치인으로 여깁니다....
1. 🤔 히틀러의 사상과 현대 정치의 유사성
- 현재 상황에서 일어나는 군사적 긴장과 관련하여 원점 타격의 불확실성을 지적한다. 특히, 전쟁의 가능성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우려가 표현된다.
- 히틀러의 자서전 '나의 투쟁'의 내용이 현대 정치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,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한다.
- '나의 투쟁'은 유대인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묘사하며, 이러한 시각이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을 언급한다.
- 민주주의에 대한 히틀러의 비판과 반국가 세력 개념을 차용하여, 현재의 정치적 반대 세력도 유사하게 배제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내포된다.
2. 🏛️ 히틀러의 정치적 여정과 민주주의의 중요성
- 히틀러는 1차 대전 참전 군인이었고, 사회적으로 왕따였을 뿐만 아니라, 사회 적응력이 제로였던 인물이다.
- 군대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임무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며 안정을 찾았던 것으로 추정된다.
-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전한 후,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의 정보사를 맡아 정치활동을 하게 되며, 이 과정에서 민족적 열등감에 격분하게 된다.
- 그는 당의 과정에서 당권을 장악하고, 독일 노동자당에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.
- 히틀러가 당대표가 된 것은 한 표 차이로 결정되었고, 이는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투표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예시로 보인다.
3. 🗞️ 히틀러의 권력 장악 과정과 언론 통제의 초기 단계
- 히틀러는 1923년 8월 나치당의 당권을 단 한 표 차로 차지한 후, 민회의 주요 인사들을 구타타하여 체포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했다.
- 민현 정부에 대한 구타타가 실패하자 히틀러는 법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펼쳐 유명세를 얻게 되었고, 이후 나치당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.
- 1933년에 히틀러는 수권법을 통과시켜 의회를 해산하고, 헌법을 넘어서는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.
- 이후 모든 정당의 활동이 금지되고 언론 검열이 시행되면서 독일은 경찰 국가로 전환된다.
- 히틀러는 내부의 반대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1934년 6월 30일에 '디데이'를 설정하고 반대 세력에 대한 청산을 실행할 계획을 세운다.
4. 🔪 히틀러의 장검의 밤: 반대파 숙청의 역사
- 장검의 밤은 1934년 6월 30일, 히틀러가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실시한 대규모 작전이다.
- 히틀러는 영장 없는 체포와 처형을 통해 자신에게 반대하던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정리했으며, 알려진 바에 따르면 500명이 사망했다.
- 작전의 주요 대상은 반대 언론인, 학자, 교수, 종교인이었으며, 이들은 바로 체포되어 즉결 처분 당했다.
- 히틀러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독재 체제 확립을 위한 중요한 단계로 작용했으며, 나치당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.
- 그의 수사적 기초는 "나의 투쟁"이라는 책에서 비롯되며, 이는 나치 이념의 근본적인 기초로 작용했다.
5. 💡 1970년대 군부 독재의 비극적 사례들
- 친위대구데타가 필리핀과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으며, 특히 1972년에 마르코스가 비상 계엄을 선포한 사건이 주요 사례로 언급된다.
- 마르코스 정권 하에 3만 명이 실종되고, 수천 명이 고문과 살해되었으며, 10년 동안 계엄 상태가 유지되었다.
- 아르헨티나에서는 1976년에 군부 독재자가 국민 정신 개조 작전을 시행하여 반정부人士를 포획하고 고문 후 시신을 대서양에 버리는 콘도르 작전을 수행했다.
- 당시의 독재 정권은 좌익 세력의 아이들을 우익 인사에게 강제 입양시키는 정책을 펼쳤으며, 피해자 가족들은 지금도 실종된 명단을 요구하고 있다.
-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여전히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, 과거의 부역자들이 현재도 권력을 행사하는 현실이 비극적으로 반영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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